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.25 전쟁/대체역사 (문단 편집) === [[1.4 후퇴]] 이후 기준 휴전선 =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195101.png|width=100%]]}}}|| 낙동강에서의 휴전보다 '''실제로 가능성이 있었던 시나리오'''가 바로 1.4 후퇴 직후의 전선이다. 중공군은 침공 직후 북한을 순식간에 재점령한 데 이어 더 남진하여 [[서울특별시|서울]]을 재함락시키고 북위 37도선[* 정확히는 평택 - 원주 - 삼척을 잇는 선.]까지 진격했다. 파죽지세로 밀려나던 유엔군사령부와 미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의 해외 이주 계획을 재차 고려할 정도였다.[* 다만 미국이 진지하게 37선 정도에서 휴전할 마음이 있었는지는 미지수인 게 [[서울특별시|서울]] · [[경기도]]에서의 철수는 중공군의 보급 문제를 야기하기 위한 전략적 측면도 있었다. 미국 입장에서도 남한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명분을 내세우려면 [[서울특별시|서울]]은 무조건 수복하고 [[삼팔선|38선]] 부근까지는 올라갔어야만 했다. [[37선]]에서 휴전을 하면 미국은 실질적인 참전 명분도 흐려지게 된다.] 이 때 [[마오쩌둥|모택동]]이 여기서 만족하고 남북한 간의 경계를 37도선에서 그어버린 상태로 휴전해서 실제로 실현되었다면 한국은 [[경기도]], [[강원도]]의 사실상 전 지역을 상실하고 [[삼남#s-1|삼남 지방]]만 보유한 상태가 된다. 즉, '''남한의 수도인 [[서울특별시|서울]], 주요 도시인 [[개성시|개성]], [[인천광역시|인천]]''', [[서해 5도]], [[울릉도]], [[독도]], [[강원도]], [[경기도]]의 사실상 전 지역, [[경상북도]][* 영주시, 봉화군 일부.], [[충청북도]][* 진천군, 음성군, 충주시, 제천시, 단양군 일부.] 일부, [[충청남도]][* 서산시, 당진시 일부. 다만, 바다를 두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남한령일 가능성이 높다.] 극일부가 모조리 [[북한]] 땅이 되었을 것이며, 위의 낙동강 전선 시나리오 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의 발전에는 매우 큰 장애물이 되었을 것이다. 이 경우 '''[[서울특별시|서울]]이 [[북한]]의 정식 수도가 되었을 것이다.'''[* 실제로 [[북한]]은 [[1948년]]에 제정한 북한 헌법 제103조에 '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는 [[서울특별시|서울시]]다.'라고 명시했고, 1972년 헌법 개정 전까지 서울을 명목상의 수도로 하였다.] [[대한민국]]은 [[서울특별시|서울]] 환도를 포기 후 당시 임시 수도이자 남한 최대 도시인 [[부산광역시]][* 서부의 경우 [[경기도평택교육지원청]] → [[부산광역시청]]까지 343km, 중부의 경우 [[충주시|충주시청]] → [[부산광역시청]]까지 285km, 동부의 경우 [[영주시|영주]] [[부석사]] → [[부산광역시청]]까지 266km, [[울진군|울진군청]] → [[부산광역시청]]까지 245km.] 혹은 [[대전광역시]][* 서부의 경우 [[경기도평택교육지원청]] → [[대전광역시청]]까지 99km, 중부의 경우 [[충주시|충주시청]] → [[대전광역시청]]까지 106km, 동부의 경우 [[영주시|영주]] [[부석사]] → [[대전광역시청]]까지 215km, [[울진군|울진군청]] → [[대전광역시청]]까지 285km.]를 수도로 삼고 [[서울특별시]]는 명목상의 수도가 되었을 것이다. 만약 [[부산광역시]], [[대전광역시]] 중 1곳이 남한의 정식 수도가 되었다면 [[북한]]에서 직선거리가 더 멀어지기 때문에[* [[삼팔선|38도선]]이 아닌 [[37선|37도선]] 기준으로 봐도 [[북한]]과의 직선거리가 [[군사분계선|실제 역사]]에 비해서 멀어지게 된다.] [[북한]]의 [[장사정포]] 발포 위협 및 포격 사거리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게 되며, 기동 방어의 여유가 생기게 되므로 방어 시 지리적으로 유리해진다.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육상과 해상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더욱 자주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, [[당진시]], [[천안시]], [[음성군]], [[충주시]], [[영주시]], [[봉화군]], [[울진군]] 같은 지역이 최전방으로 격상되고 이 지역으로 침투할 북한 게릴라를 막기 위한 병력 또한 증강되어 발전에 악영향이 있었을 것이다.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역사적 [[고도(도시)|고도]]인 [[서울특별시|서울]], [[평양시|평양]], [[개성시|개성]]을 [[북한]]이 가져가게 되고, 남한에 남는 [[고도(도시)|고도]]는 [[경주시|경주]], [[공주시|공주]], [[부여군|부여]] 정도인데 경주를 제외하곤 수도였던 기간이 짧으며, 무엇보다 중세사 이후의 한국사 수도가 부재하게 되므로 역사적 정통성 문제에서 남한이 상당히 불리해진다. 37도선에서 분단되었다면 [[경기도]] [[평택시]], [[안성시]] 일부 만으로는 [[경기도]]를 존치시키기 어렵기 때문에, 이 경우 남한령 [[경기도]] 지역은 [[충청남도]], [[충청북도]]로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. [[울진군]]의 경우 군역(郡域)이 분단된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. 즉, 울진군 일부는 [[북한]] 지역이 되는 것. [[울진군]] 일부 만으로는 [[강원도]]를 존치시키기 어렵기 때문에,[* 울진군은 1945~1953년 당시 강원도였다.] 남한령 울진군 영역은 [[정전 협정(6.25 전쟁)|정전 협정]] 이후 바로 [[경상북도]]로 편입되었을 것이다. [[경상북도]] [[영주시]] [[부석면(영주)|부석면]]에 있는 [[부석사]]의 경우 정확히 37도선에 있다. 37선에서 분단되었다면 [[부석사]]는 실제 역사의 [[태봉국 철원성|철원 궁예도성]]처럼 정확히 [[비무장지대]] 안에 있으며 [[군사분계선]]이 관통하게 되므로, 조사 및 관광은커녕 접근 자체부터 어려웠을 것이다. 이 무렵 '''UN은 새로이 참전한 중공군과 휴전하기를 원했으므로 모택동만 정전회담에 응했다면 실제로 실현됐을 테지만,''' 한국 정부는 [[서울특별시|서울]]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, 마오쩌둥도 중공군이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자 이에 고무되어 유엔의 정전 요청을 무시하는 바람에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못 했다.[* [[이승만]]은 마지막 순간까지 [[북진통일]]을 주장하였으며 차선책으로 [[개성시]] 탈환에 대해서도 목맸을 정도이다. 그나마 [[한미상호방위조약]]을 체결하는 선에서 휴전을 묵인했지만, 만약 [[수도권(대한민국)|수도권]]을 포기한 채 휴전을 맺으려 했다면 미군은 물러가고 남한군만으로 싸우겠다고 결사 항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